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의 아들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 시절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인해 군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 델포이로 건너가 신에게 장래에 대한 계시를 빌었고, 신으로부터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계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시며 20여 년간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342년에는 마케도니아 왕의 아들 알렉산더의 스승이 되어 마케도니아에 7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355년 아테네로 돌아간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원을 열고 뤼케이온의 울창한 숲을 산책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숲을 소요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하여 아리스토텔레스학파를 소요학파라고 부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에 있어 행복이 가장 중요하며, 바람직한 삶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였습니다. 에우다이모니아란 영어로 'happiness', 우리말로는 '행복'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그의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간의 선한 삶에 필요한 덕목을 탐구한 책으로, 행복이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이며 행복은 덕의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논증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우연히 얻게 되는 순간의 행복이 아닌 지속적으로 행복한 삶을 말합니다. 그는 삶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고유한 일이 바로 행복이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탁월하게 수행하였을 때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쾌락과 명예, 탁월성, 경제적인 부, 선의 이데아가 행복이라는 의견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인간은 짐승이 아닌 이성적 존재이기에 쾌락이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명예와 인기는 대중의 기호나 취향,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이고 불확실한 것이므로 행복, 즉 궁극적인 인생 목표로 볼 수 없습니다. 셋째, 그리스어로 성격과 능력을 의미하는 탁월성은 살면서 발휘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탁월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비참한 삶을 보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자체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넷째, 경제적인 부는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므로 재산을 행복과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 선의 이데아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해도 현실의 실천 생활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선의 이데아를 인생의 궁극적 목적으로 보는 플라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인 삶이 참된 행복에 이르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무엇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인간이 잠재하는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라고 답변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수련을 통해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영양과 생식의 기능, 두 번째는 감각과 욕구의 기능, 세 번째는 이성과 지성적 사유의 기능입니다. 이 중에서 영양과 생식의 기능, 감각과 욕구의 기능은 동물이나 식물에서도 볼 수 있으니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쾌락만을 좇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이성과 지성적 사유의 기능만이 인간 고유의 기능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참된 기능이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만족할 만한 삶이며 궁극적인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성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능이라면, 인간에게 고유한 것은 이 이성에 따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삶이 곧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참된 행복은 우리의 이성이 고유한 기능을 잘 발휘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적 정신이 온전히 발휘될 때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상태이며 이것이 행복한 상태인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행복은 이성적인 노력뿐만이 아닌 삶 속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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